흙에서 천국까지 ( 신앙교재 )

흙에서 천국까지 - 종말론 - 7단계

늙은 Benhur 2025. 6. 7. 09:33
제 7 단계



종말론 (終末論, Eschatology)

종말은 과연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는지요.  있다고 하면서 믿어지지 않는게 바로 세상의 종말이요, 각 개인의 종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세상 종말의 날짜와 각 개인의 죽는 날을 가르쳐 주시지 않음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만약 알려주셨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나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아실 줄로 생각합니다.

 

전도서 3장1-11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고…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처음과 나중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번 시간부터 하나님께서 날짜를 알려주시지 않은 두 가지 종말 중에 먼저 세상 종말에 대해서 논 해 볼까 합니다.

 

제 1 과  천년왕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유일한 성경 밖에는 절대로 없으며 성경을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의 지상강림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눅 17:30, 21:36) 성경에는 분명히 역사를 주도하시며 역사를 꾸미시고 역사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우신 경륜(Administration)이 바로 성경입니다.

 너희들은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에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들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니, 이러므로 너희들은 장차 닥아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 34-36 )

 

구약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에 대한 모형(Type)이므로 실제(Reality)에 대한 그림자(Figure)입니다. 신약은 모형에 대한 실제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림자에 대한 실상(Substance)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것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구약은 실상에 대한 그림자임을 깨닫고 읽지 않으면, 성경을 헛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이야기한 책이요(눅 24:27, 44- 요한복음 5:39)

 

신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에 대한 증거 한 책입니다. (요 1:14)

 

오늘날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세대주의적 전천년) 해석한 결과로 재림과 천년왕국을 왜곡하여 감정적 신비주의와 안일 도피사상으로 빠져드는 사례들을 볼 수가 있었고 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라면 세상에 살아가면서 환란과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 5:10-12) 그런데 이런 것을 피해서 물질 축복에 치중하여 소위 요행주의 신앙을 부채질했을 때, 믿음이 약한 교인들은 자연히 환란 도피  의식으로 쏠리다가 푹 빠지고  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 삶 속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체로 잠깐 없어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성경을 성경에 의해 해석하려는 것보다 자기만족의 심리에서 나온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아전인수  

자기 논에만  물대기라는 뜻으로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을 하는것.

 

가난하고 병들고 망했던 실패 의식에 물든 약소 민족일수록 어려운 환란을 피해보고 싶은 소원은 강할 것입니다. 이 해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적어도 참된 성도라면 핍박과 고난과 순교의 일사각오에서 탈피하려는 무책임한 도피 근성만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 환란과 핍박을 받으며 광야를 거쳐 나온 성도가 천국에 갑니다.

  (고전 10:1-12, 욥 23:10, 암 5:1-3,  민14:26-34)

 

* 말씀에 소망을 두고 끝까지 견디는 성도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마 24:13, 살전 1:3, 롬 15:4, 딛 1:2, 갈 5  :5, 골 1:27)

 

더욱 눈물 흘려 기도하고, 몸 바쳐 기도하고, 물질 들여 구제하고, 시간 드려 헌신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보양하고 섬기는 것이 말세에 처한 성도들의 참된 신앙 자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참된 성도들의 종말관은 교회론에서 언급했듯이, 개인 목회(단독), 가정 목회, 직장 목회에 각자가 목회자로서 성공하는 성도가 참다운 종말관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중생의식과 종말의식을 동시에 조화시키며,   새벽기도 모임이나 예배에 참석하여 오늘이 나의 최초의 날이요,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로서 자아의식을 쳐냄으로서  주님만을 위한 뜻있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천년왕국(Millennialism)이란. 

요한계시록 20 : 1-10까지를 기초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시기 전이나 후에 주의 백성들과 함께 천년왕국을 건설하실 것을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교파에선 그런 일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왕국설은 다섯 가지 설로 나누어지는데,

* 역사적 전천년, 

* 세대주의적 전천년, 

* 무천년, 

* 보수주의적 후천년, 

* 자유주의적 후천년설로  구분이 됩니다.

 

그럼 하나씩 그림을 보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고 100% 이해가실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조금이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실것으로 믿고 기록하였습니다.

1) 역사적 전 천년설 (Historical Pre-millennialism, 환난 후 강림설)

 

먼저 역사적이란 ?

창세기 3장으로부터 11장 9절까지 2,000년 - 11장10절부터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날까지 2,000년, 그리고 현제로서는 대강 2,000년 즈음, 모두 6,000년 즈음이 지났고, 앞으로 1,000년 왕국이 도래하면  도합  7,000년 즈음이 되면 이 세상은 종말을 마지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세월속에 역사적 실제 사건들이 예언되었고, 이제 남은 천년왕국을  논할 때 실제 역사적으로 천년을 본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세상 종말의 시기는  제 3과  세상 종말에 대하여 !   를 참조하시기 바람 !

 

교회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상대인 성도들을 천국 백성답게 성장시키는 거룩한 처소이므로, 마지막 때 환난과 핍박과 연단으로 교회(성도들)의 찌꺼기를 뽑아내고 순도 높은 정금이 된 참된 교회(성도)들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지상강림하신다는  말들은 많이 하지만, 

그 말보다도, 예를 들어 서울 상공에서 강림하신다면 그지역 성도들은 보고 알수있겠지만 부산 하와이 등등 에서는  전세계적으로는 볼수가 없기 때문에 그보다 시간 공간 물질을 초월하시어 전세계에 살고 있는 참된 성도님들 마음속에 성전삼아 계셔서 끝까지 믿음으로 견딘 참다운 성도들, 즉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신부들에게 기쁨의 감격과 함께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는 학설입니다.

 

지상 교회도 7년 환난에 동참함.

前 3년 반 : 비교적 온건한 핍박기

後 3년 반 : 극심한 핍박기 

 

성도의 육체적 부활, 예루살렘 재건 및 유대인 회복, 의와 평화가 충만,

땅의 과일은 풍부, 사탄은 천년동안 감금되므로, 곧바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에서 천국을 맛만 보다가 원적과 본적이 있드시 원 천국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복과 낙을 누리고 하나님께 택함받지 못하고 마귀를 따라간 자들이 백보좌 심판대로 들어가는 장면이 계20장4-15까지 기록되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 용을 잡으니 곧 옛뱀 마귀요 사탄이라 이것들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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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대주의적 전 천년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환난 전 재림설)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불원간 나타나셔서 잘 믿는 교회(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려 (휴거), 공중에서 혼인잔치를 벌이고 그 기간 동안 지상에는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시작되며,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류 전멸 직전에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에 참석한 교회(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강림하셔서 사탄들을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는 손오공 전천년설로서 매우 신나는 학설입니다.

공중 혼인잔치.

그리스도와 성도의 지상 강림.

적그리스도의 출현, 유대인의 회개 및 회복.

 

이 학설은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일어난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의 합성자 넬슨 다비- 세대주의에 아버지 (Nelson Darby, 1800년-1882년  아일랜드 출생)가 당시 실권을 잡고 타락한 기성교회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새로운 학설로서 영적 운동을 일으켰고 그 후에 미국에서 그의 운동이 본격화 되어갈 때 스코필드( 1843-1921 - 미국의 신학자,목회자 - 종말론과 세대주의를 대중화 시킨 ) 박사가 이에 가담하여 성경을 주석하였는데, 그는 성경을 시대적으로 나누어 하나님의 경륜을 일곱 세대로 보았다.

 

이로부터 세대주의(dispensation) 란 말이 나왔으며,  실로 스코필드 성경은 세대주의 운동이 실질적으로 구체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스코필드 성경은 기독교 2,000년의 성경 해석을 완전히 뒤엎고  성경을 문자적 해석을 주창함으로 새 신학 체계를 세웠다.

 

세대주의 성경해석의 원리는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보다 (구속사적)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 라는 원칙을 갖고,  구약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따르는 천년왕국이므로 모든 선지서는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으로 보며, 예수 십자가의 중요성보다 천년왕국이 더 중요하고 환난을 피하는 휴거가 더 중요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학설로써 특히 한국에 많은 목사들이 6.25 이후 미국으로 유학들을 많이 가서 신나게 배워가지고 온 구름타고 나르는 일명 손오공 전천년 학설이다.

 

* 세대주의 전천년 설의 중요한 3가지 !

1). 킹제임스 성경이나 스코필드 관주 성경을 중요시 한다.

2). 성경으로 국제적인 정세를 예측하기에 항상 음모론을 주장한다.

3).1.800 년도에 미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매우 친 미국적이다.

 

* 세대주의 전천설의 위험성은 시한부 종말론과 관련있게 짜깁기하여 3차대전은

  언제 일어나고, 예수님은 언제 강림하시고 라는 예언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겁을 먹게하거나 음모론에 사로 잡히게 선동한다.

 

  한국을 시끄럽게 만든 이장림 목사의 다미 선교회가 실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아래 영상.

  1992년 한국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이장림 목사의 세대주의적,( 일명 손오공 전천년 )

   휴거 사건에 전말을  아래 영상을  참고하시라고 ...

 

https://youtu.be/cj-_0Fc2A5U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성도들이라면  확실한 종말의 때는 모른다,

  라는 태도를 항상 견지 해야만  한다.   물론 어느정도 예측하는 것은 괜찮다고 보며,

  늘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면서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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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 천년설 (A-Millenialism)

 

무 천년설이란.  글자 그대로 전 천년이나 후 천년설에서 말하는 천년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으로 세상은 끝나고 천년왕국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신천신지로 들어간다는 학설이며,  또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의로운 사회가 천년동안 계속된다는 소위 후 천년설의 주장이나 또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천년 동안 정치적인 왕국을 건설하여 통치한다는 전 천년을 믿지 않고,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시편이 예언한대로 메시아 왕국이 일단 건설되면 영원한 것이지 일시적으로 천년 동안만 있다가 다시 폐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학설이다.

 

그리스도의 통치 및 교회의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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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수주의적 후 천년설 (Conservative Post-Millennialism)

 

보수주의적 후 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영적으로 생각하고 복음시대가 지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모든 인간을 동시에 부활시키며, 오늘의 교회시대를 천년왕국 기간으로 보는데, 그것은 기독교 사회주의에서와 같이 복음을 사회개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통하여 변화 받은 개인 영혼들이 정치, 경제,사회, 문화, 교육, 과학 각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여 영적 왕국이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간을 천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문자적인 천년이 아니고 복음시대가 계속되어지는 그 기간 전체로 생각한다. 또 전 세계 인구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믿는 자가 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세계는 불신자들보다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학설이다.

 

교회의 황금시기, 유대인의 회복, 복음의 편만, 전례 없는 영적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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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유주의적 후 천년설 (Liberalistic Post-millennialism)

 

이 학설은 그림을 보면 이해가 갈 것 같기에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자연적이고 진화적인 사회 발전, 문화의 향상, 과학의 발전

인간의 점진적 개혁에 대한 유토피아 건설, 개인의 가치와 자유가 존중됨,

   정치적 평화와 경제적 평등

 

※ 아래 그림을 보면 참으로 헛갈리기 때문에 안봐도 좋음.

 

이렇게 많은 학설로 말미암아 신앙이 퇴보될 가능성도 무시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신학자들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학설이지 진리는 아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참다운 종말론에 대비한 성도라면 하루 하루의 삶을 중요시 해야만  한다.

 

오늘이 나의 생애의 최후가 될지 모르는 안개 같은 인생을 성경 말씀과 기도로써 능력 받아 매일매일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 종말과 아울러 인생 종말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종말론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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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록된 글들의 제목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1.인생 종말에 대하여, 

가. 왜 인간은 죽어야하나.

. 죽음의 단계.

. 용서받은 성도가 왜 죽어야하나.

. 성도의 죽음은 어떤 것인가.

. 시신은 어떠개 처리해야 할까.

. 죽음 후에 중간 상태란?

2.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3.천국은 어떤 곳인가 ?

4.사도신경은 진실다웁게 고백하려면,

5.로마교 (천주교)의 연옥설의 바탕 !

6. 맺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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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먼저 주님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른 내용들도 중요하고 중요합니다 만, 각자 개인인 에 대한 살고 죽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에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인생이 무엇인가 왜 죽어야 하나, 그럼 죽으면 어데로 가는 것일까 ,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에 대한 심각하고 두려움과  -  행복하고 기쁜 - 문제들을  글로서 남겼으니 다른것들은 못보시드래도 이글만은  반드시 읽어보시면서 가시는 방향을 찾아 꼭 붙잡아 놓으시기를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꼭 읽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1. 인생 종말에 대하여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정해진 수명 다하는 날,  기(氣)가 빠지면서 심장의 작동이 멈추고 육신의 활동이 정지되면서부터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죽음이 인간들에게 닥처올까요, (시편 90 : 3, 욥기서 34 : 15, )

 

 다 흙에서 왔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에 혼은 이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도서 20:21/ 12:7)  

 

먼저 죄의 값을 치르는 최대의 행위입니다.

죄의 삵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영생이니라. ( 로마서 6: 23 )  죄의 삵은 사망 이란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 앞에 당하는 최고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론부터 말씀드린다면 불신자들에게는 천국을 택할 기회가 없는 무서운 심판의 디딤돌이 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되게 믿는 성도들에겐 무서운 심판이 아니고 생애 최대 최고의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삶과 죽음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 예정된 성도들에게는 / 개혁주의 신앙교리 중 ) 약속의 말씀 그대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값은 온 인류에게 이어져 내려왔고 그 죄의 값으로 말미암아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오래 오래토록 살아보겠다던  시저도, 진시황제도, 히틀러도, 모택동도, 김일성, 김정일이도 모두가 다 죽어서 좁은 땅에 무덤만 크게 만들어 놓고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죽음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일단 가면 다시 못 오는 일방통행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지요.

 

많은 시인이나 철학자들의 글을 보면 죽음이 무섭고 슬프고 허무함을 나타내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어떻게든 무섭고 두려움을 잊어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죽음이란 무서움을 피해보려고 여러 가지 종교를 만들고 또 이상한 예식들을 행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시황은 늙지 않으려고, 즉 죽지 않으려고 340 명의 심마니들을 깊은 산중으로 올려 보내 불로초를 캐어 오라고 했는데  그들 모두가 산속에서 다 늙어 죽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나 죽음이란 불청객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되매 진시황제도 55세의 분한 얼굴로 허공을 저으면서 죽음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가수 최희준 장로가 부른 노래 " 인생은 나그네 길 "을 들어보고 글을 만들어 봤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잠시 머물다 가는 하숙생

시발역은 어디며 종착역은 또 어딘가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내려도 인생은 쉬지 않고 가야만 한다

기쁨과 고통이 때로는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도

인생의 종착역까지 우리 모두 가야만 한다.

아 ! 심장이 뛰는 이 고동소리는 죽음의 장송곡이 아닌가

 

이 세상에 많은 인간들은 죽음의 장송곡에 장단 맞춰 살다가 모두가 인생의 종착역까지 가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자기 자신의 종말을 한번 쯤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신명기 32:29)

 

인생이라면 자기의 종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의 종말과 사후세계의 내세관이 뚜렷해야 삶의 가치와 의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껏 긴 시간에 걸쳐 성경을 배웠고, 하나님을 배웠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도 깨달았고,  또 예수그리스도도 배웠으며, 성령의 구원과 교회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못들은게 아니고 관심이 없어서 그냥 흘러 보내셨을 겁니다.

 

아무 의미도 모르면서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긴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늙으면 죽는 것은 사실이나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들 떠드는데 이왕이면  천국에 가고 쉽은마음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지요

 

그러나 천국은 이 몸으로는 못 가고 반드시 이 몸을 파괴시킨 후, 즉 죽은 후,  신령한 몸, 영화로운 몸, 강한 몸으로만(고전15 : 44)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육의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도 있느니라. ( 고전 15:44 )

 

죽음 저편에 눈부시게 비치는 바로 저 천국을 가고자 지금까지 이 고생해가면서 살아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참다운 성도라면 죽음이 무섭지 않고 슬프지 않으며 결코 남들이 말하는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그런 형벌을 당하고 그런 두려운 말들을 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알고 진실 되게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부터 인생 종말론을 공부하면서 이 사실을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강조 드리는 말씀은 성도들의 죽음은 천국 문을 여는 디딤돌입니다.

즉 멸망이 아니라 인생 전반전 삶이 끝나고 다 떨어진 천막 같은 육신의 전셋집 기한이 끝나서 훌떡 벗어 던져 버리고, 인생 후반전에는 맨션 같은 집으로 이사 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 드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1. 왜 인간들은 죽어야 하는가.

1) 피할 수 없는 죽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창세기 3:19)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에 한 정점 같을 뿐이니이다. (시편 90:3)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셨기에 부르시면 아무도 그 작정한 때를 변경하거나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도 죽을 날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그곳을 가게 되었노라(왕상 2 :1-2)고 죽음의 일반성을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는데도 시인처럼 시적으로 한마디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베드로전서 1:24)

 

죽음과 사후세계의 모든 문제는 사리나 경험이나 상상으로 알 수 없고 오직 성경의 진리만이 바로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죽음은 자연적인가

근대 과학과 의학은 죽음이란 생명체의 철칙이며 생명체는 죽어져 썩어 분해 될 운명이란 견지에서 죽음이란 자연적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죽게 지음 받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니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믿는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말입니다.

 

3) 죄의 값으로 오는 죽음

성경은 죄 때문에 죽음이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6:23)

 

그러므로 죽음은 자연주의자나 현대주의자들이 설명하는 자연 법칙의 결과로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죄가 없었다면 죽음은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은 행위 언약을 어긴 죄의 값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죄를 범한 일도 없는데 고통으로 죽는 것을 TV에서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의 전가를 실제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4) 아담의 죽음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 고 하였는데 어떻게 930년이나 살았을까요. 그러나 먹는 그 순간에 그는 영적으로 죽었고 그 후 930년을 살다가 육신이 죽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죽음의 정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란 소멸(消滅)이 아니고 단절(斷絶) 곧 끊기는 것을 뜻합니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긴 것을 영적 사망이라고 하고, 그 결과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육적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영적 죽음이 먼저 있은 후 육적 죽음이 뒤따랐으나, 사실은 육체적으로도 죽은 것이나 다를 바가 아닙니다. 물론 오래 살았으나 범죄 직후 육신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로 늙어지기 시작하였으니 말입니다.

예를 든다면, 강대상 꽃이 꽃밭에서 가위로 자른 후 며칠 정도는 이쁜 꽃다웁게 자라납니다만  약 일주일 정도 있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가위로 절단하는 그 순간부터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930년이란 긴 세월은 진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움직인 한정된 기간이었습니다. 

 

마치 마른 오징어를 구공탄 불위에 올려 놓으면 꿈틀댑니다. 꿈틀덴다고 살아있는것이 아닙니다. 구공탄 불에 열기로 꿈틀데다가, 구공탄 불에서 나오면,  즉 한정된 열기가 살아지는 시간이 닥아오면  뻣뻣해 지지요. 

이와 같이 930년이란 긴세월을 하나님이 주신 기(氣)로 살다가 때가되매 그 기(氣)가 빠지므로 뻣뻣해져서 흙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늙어지는 현상이 바로 죄의 삯을 받으러 가는 길, 즉  뻣뻣해져 가는 길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5) 죽음의 비정상성

. 죽음을 정죄의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16-17에,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오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이라고 하였으니, 자연히 태어나서 자연히 죽는 인생이라면 구태여 정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시 90 :7에,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 내심에 놀라나이다. 라고 하였으므로 자연히 죽는 인생이라면 분노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희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하느니라 (로마서 1 : 32)

 

자연히 죽는 인생이라면 심판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66:16에,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 즉 여호와께 살육 당하는 자가 많으리라.

 

.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온다고 하였습니다.

3:13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고 하셨습니다. 자연히 죽는 인생이라면 구태여 저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 죽음은 공포로 표현되었습니다.

히브리서 2:15에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철없는 어린것들도 겁을 먹는 것을 보니 죽음이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임이 확실합니다.

 

6) 영생의 비결

죽음은 자연히 오는 것이 아니고 죄의 값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만 처분되면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죄인인 인생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자격이 없습니다. 

 

역사상 죄 없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며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시기에 살아나셨음이 당연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죄의 값이 사망이란 것은 변할 수 없는 철칙이며 죄 없는 예수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타당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 1:18)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개인 문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은 죽음이고 보니 그의 부활도 그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마지막 아담의 자격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가 없으셨기에 부활하셨으니,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의가(영생이) 전가되므로 의롭다 함을 입어 죄가 사하여지면서 마침내 부활의 축복을 받으면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행복에 대하여,

시편 32 : 1-2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림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환희에 넘쳐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2. 죽음의 단계

인간은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느니라 (전도서 3: 1-22 )

사람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같으매,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의 죽음 같이 사람도 같은 죽음을 하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으로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그러나 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생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위로 올라가고 (천국과 지옥), 짐승의  영혼은 땅으로 내려 갈 줄을 누가 알랴.( 전4:19-21)

 

흙으로 돌아떨어지는  인생들이기에  죽은 자들을 보고  사용하는 말이 "돌아가셨다" 라고 하지만,  예수를 믿는 분들은 이런 말을 사용해서는 않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가셨다.   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죽음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죽음에 대하여 논하여 순서대로 논해 볼까합니다.

 

1) 영적 죽음

2 : 1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라고 한 말이 바로 영적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 상태에서 끊긴 비참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영적 사망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제일 먼저 내린 형벌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할 때에 만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까닭에 영적 사망이라 함은 아담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 ( 지, 정, 의,  )을 완전히 타락시킴과 동시에 계속적으로 악화시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적 사망은 마치 독약을 수원지에 뿌리면 전체 먹는 물이 오염되는 것처럼 인생의 전 생애를 더럽히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4 )

 

대체로 영적 사망은 마귀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반 은혜를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마들의 경지까지는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고 계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의 일상생활은 생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기에,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 중에서도  천국은 못가드래도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2) 육체적 죽음

창3:19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이 바로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 역시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천사와 달라서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연합되어 사는 묘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감각을 통하여 지식을 얻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타인이나 주위 환경을 접촉하는 기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접촉을 잃게 되지요. 성경은 말하기를 죽은 사람의 영혼은 이 세상에 떠돌아다니거나 살아있는 사람과 일체 접촉할 수 없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서로 교통할 수 있다고  말한 근거는 없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침례교 베뢰아 신학대학 귀신파 김기동목사에 (사망) 매형 한만영목사에 ( 사망 ) 조카 한기홍 목사 (은혜한인교회 담임)그리고 한만영의  대학통장  김광신과 ( 사망 ) 귀신파 대형교회  이태화, 김삼환등등  광신자 이들은 불신자가 본래 수명이 80살인데 60 에 죽었으면 20년 동안을  귀신이 되어 이세상에 떠돌아 다니면서 사람에게 들어가 여러가지 질병을 일으킨다면서 그 귀신들을  쫓아 내려고  "감기 귀신아 물러가라 ! 콧물귀신아 물러 가라 ! " 고함을 치지만 귀신은 물러 갈지 몰라도 마귀의 지배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달어야 합니다.

 

화학적 성분으로 구성된 육체는 죽으면 본래 고향인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육체의 죽음입니다. 사람마다 죽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많은  인간들은( 김일성,김정일, 모택통 등등) 시체에 약을 발라 썩지 않도록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죄를 범하던 그 모양을 그대로 보관해 두는 것이니 성경 말씀을 거절하는 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대형 교회에서 1년에 얼마씩 받고 납골당을 운영하는데 이것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3:19)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또 하나의 죄를 범하는 행위지요.

 

3) 영원한 죽음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 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계시록 20:13-15)

이 말씀이 바로 영원한 사망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던 불신자들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 때 부활되어 심판을 받아 지옥에 버림을 당하는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죽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사망 - 육적 사망 - 영원한 사망 -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순서이자 정의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이 세 가지 죽음을 다 당하고 맙니다. 영적 죽음을 당하니 육신도 죽고 나중에 백보좌 심판 때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중생하였으므로 영혼이 살고 육도 신령한 몸으로 살고 영원히 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태어난 사람은 세번 죽고,  두 번 태어난 성도들은 한번만 죽는다(육신의 죽음).  이 진리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용서받은 성도가 왜 죽어야 하는가.

1) 성도의 죽음은 영혼 성화의 필수적인 방편입니다.

성도들이 완전한 칭의(稱義)는 받았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세우신 은혜의 계획에 의하여 육체적 죽음은 필수적이며 이것은 성도들의 영원한 유익을 위하여 필히 당하는 귀한 시련입니다.

 

징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은 자비로울지라도 당하는 성도에겐 그 자체는 기쁜 것이 아니며 언짢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실 때 나쁜 것에서 유익한 것을 가져오시는 절차를 지혜롭고 또 친절하게 행하시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쓰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병든 자식을 고치기 위해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식을 살리기 위해선 의사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이 죽음이란, 인간에게 끔찍한 사건이지만 성화와 영생을 얻는 방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2) 성도의 죽음은 완전한 몸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완전한 영혼과 완전한 육신을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현재의 육신을 일단 파괴(죽음)시켜야 새 사람으로 부활시켜 완전한 영혼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안다면 우리들은 육체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도리어 신령한 몸을 가진 사람이 되는 준비단계임을 기억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아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편 116 :15에,  여호와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시는도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에게  잔다. (요11:11), 회당장의 딸이  잔다. (눅 8:52)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는데  잔다. (행 7:60) 란 말씀을 많이 사용하심은 언젠가는 깨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고전15:6, 18, 20, 51, 11:30) 

 

그러므로 천국으로 가신 성도님들 장례식장에가서  시끄럽게 울고 짜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자 초상집에 가보면 대성에다가 통곡까지 하면서 절망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기독교 가정의 장례식을 보면 엄숙하게 거룩하게 지내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왜 그럴까요.  불신자는 다시는 영원토록 못 만날 것을 영혼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절규를 하는 것이고, 

 

기독교 가정의 장례식은 잠시 잠깐 헤어졌다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운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4. 성도의 죽음은 어떤 것인가요.

 

1) 성도의 죽음은 본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빌립보 3:20 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군대생활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제대증을 받아 집으로 가는 그 기분…. 월남전에서 전투 임기를 마치고 사이공 항구에서 APD 고속 수송함을 타고 귀국하는 해병대 용사들에게 이별의 손수건을 흔들면서 눈물을 닦는 월남아가씨 ! 수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 APD 전투 수송함 ! 

월남아가씨 눈에는 전투수송함이 사라졌으나 며칠 후 부산 제1부두에 마중 나온 가족들의 환영을 받은 그 후, 월남 여자는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시집오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육신은 땅에 파묻고 그 흔적마저 없으나 천군 천사의 호위아래 천국으로 개선가를 부르며 입성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성도의 죽는 날은 영광의 절정에 오르는 날입니다.

누가복음 23:43 말씀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죄의 슬픔과 고통과 실망과, 괴로움과 고난의 현 세상을 떠나서, 보다 더 좋은 세계, 거룩하고 복된 세계,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직접 영원히 교제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극치의 낙을 누리는 곳이기에 사도 바울은 ,

고후 5:8에,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죽어서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주님 계신 곳에 들어가는 기쁨이 영광스럽고 즐거운 것이어서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실 때에는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육신을 떠나서 주님께 가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신앙으로 항상 무장해야만 합니다.

 

5. 시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족들이 많고 생활에 부요함이 있으면,  가까운 묘지에 안장하여 일년에 한두번 특히 무슨 날이 되면 헤어졌던 가족들이 점심을 싸가지고 무덤 앞에 돗자리 깔고 둘러 앉아 식사기도 한 후 손자 손녀들 한테 추억에 담은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맛있게 먹되 바베큐는 삼가해야 하며 식사 후 묘지 주변을 청소하고 풀이 무성하면 깍아주고 난 후 묘지를 떠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묘지 비석위에 초상화나 부고란 글을  써놓고 음식차린 밥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행위는 절대로 하여서는 안됩니다.

 

물론 가족들이 별로 없는 가정은 화장하여 큰 수목이나 바위에 또는 냇물이나 강물에 뿌리므로 가족들의 모임을 가질 필요가 없고 서로들의 전화로 연락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화장한 유골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방안에나 또는 년얼마를 지불하고  납골당이란 곳에 두면  절대로 않되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무서운 죄가 됩니다. 하나님 명령에,

" 네가얼굴에 땀을 많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찌니라.( 창세기 3 :19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

이 말씀을 어기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

 

6. 죽은 후의 중간상태란 어떤 곳인가.

 

인생의 모든 생애는 3단계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로,  모태에서 죽을 때까지,

둘째로,  죽고 나서부터 부활할 때까지 영혼 상태,

 

셋째로,  영혼과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영원한 무궁세계로 들어가는

 

어떤 사람들은(안식교) 말하기를 사람이 죽어 부활 때까지의 중간 상태는 무의식적인 수면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후 부활로 말미암아 의식을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구약 성경에 사람이 죽으면 잔다고 말한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입니다. (시 115:17, 전 9:10, 눅 8:52, 고전 15:51 등)

 

그러나 성경에 죽음을 잔다고 말한 것은 세상에서 육체의 무감각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영혼까지 무의식 상태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특히 누가복음 16:19-31에 보면 부자가 육체의 고통도 당하며, 의식이 뚜렷한 상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비유라고 하나 성경은 그런 동정적인 점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비유라고 하신 적도 없고 나사로란 실제 인물이 나오는 것은 비유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부자의 이름은 없지 않는가, 라고 따지는데 부자의 이름이 없는 것은 예수님의 제한 속죄를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즉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만을 구원하시고 반면에 아무리 유명한 대통령, 재벌, 박사, 배우, 가수 등 세상에서 이름이 높았더라도 내세에서는 무가치하여 생명록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 :19-31에 보면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곧 천국에 있었고, 부자는 음부, 곧 지옥에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완전한 의식을 가진 똑똑한 상태였습니다. 그럼 중간상태에서 성도가 가지는 의식 상태와 불신자가 가지는 의식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성도가  할 수 있는 의식적인 상태는

* 주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 부활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 상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기로 결정된 사람이 기다리는 즐거움이 좋겠거든,

  하물며 썩지 않는 하늘의 상을 기다리는 성도들이야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반면에 불신자들이 겪는 의식 상태는

*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으니 고통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입니다.

* 심판의 부활을 기다리는 괴로움이 계속되는 곳, 영혼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까지 부 활하여 당하게되니 끔찍스러운 일입니다.

 

* 벌을( 군대에선 기합) 기다리는 괴로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중간상태에서

   받는 음부의 괴로움도 고통이지만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하루, 한 달, 한 해를 속아서 살면서도 무엇인가 좋게 되겠지…하면서 소망을 갖고 삽시다. 

그러나 음부에 간 자들은 실오라기만한 소망조차 없이 가면 갈수록 고통만 더해 가는 비참한 장소임을 깊이 깊이 깨달으시고 다른곳은 가도  다시돌아오면 되지만 지옥만은 다시돌아 올수가 없는 곳이니 절대로 기필코 가시면 않되는 곳임을 천명하면서  윗글들은 자주 읽어서 의식화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005. 11.5  뉴욕의 수도 니스카유나에서 생명샘교회 목회중

김 영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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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세상의 종말

 

그럼  성경에  기록한  세상의 종말은 언제 쯤인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지 벌써 2.00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믿는 사람들의 귀는 그냥 듣고 흘려버리는데 만성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요리저리 쪼개서 재림에 대한 여러가지 학설들을 많이 발표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종말관에 대해서 헷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날과 그 때를 밝히므로 예언이 어긋날 때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반응적인 만성심리 상태에 빠져서 진정 오시는 그 날에 깨여있지 못하여 기름 준비 못한 교인들을 지옥으로 쓸어 넣으려는 마귀의 교활한 술책임을 깨달으시면서 모든 역사와 때는 하나님만이 주관하심을 망각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유일한 성경 밖에는 절대로 없으며 성경을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눅 17:30, 21:36) 성경에는 분명히 역사를 주도하시며 역사를 꾸미시고 역사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우신 경륜(Administration)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서야 세상 끝이 오리라.(마태24:14)

 

이 세상에 국가들을 보면, 유엔 기준으로는 195개국가로 인정하고 그외 국가목록을보면 237개국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수가 있는데 오래전에는  많은 선교사들의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파한 피눈물나는 선교활동으로 복음을 못들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목에걸고 선교지를 순회하며 찍은 사진들을 중 대형교회에서 선교활동보고라는 명목으로 발표하고 돈거둬가는 선교사가 아닌 돈교사들이 많이 있음을 볼때  주님의 복음이 온세상에 거진  다 전파되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럼 태어나지 않은 태중의 아이들과 태어나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사람은 태중 훨씬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택한 하늘나라 백성들이 때가되매 부정모혈로 이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교회생활로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인간과의 부디침으로서 성경의 말씀으로 자기의 존재를 깨닫게되고  주님을 진실하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엡1:4 - 6 )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예레미아 1 : 4 )

 

이렇게 만세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신 백성들은 이미 천국으로 갔을 것이고,  또 나같은 성도들은 천국으로 갈것을 굳세게 믿으면서 내 마음을 정리하고 혼적인 (생각, 정신, 감정, 의지) 기능들에게  붙었던 필요없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삭제하고 털어내면서 살아가고 있다가

나도 그때가 되면 한많은 이 세상을 훌훌털것도 없이 간편한 마음으로 손오공처럼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지상 강림하실 때 알곡과 쭉쟁이를 가르는 7년 대환란을  주님의 도움으로 이긴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품안에서 천국으로 갈것을 확신합니다.

 

손오공 전천년 처럼 공중으로 휴거하는 것이 절대로 없음을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그럼 언제가 모두 끝인가를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온역(질병)이 있겠고 무서운 일들이 하늘에서 큰 징조가 있으리라.(눅 21장...)

 

마태  (24: 30-36 ) 에,

30절 -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절 -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32절 -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32절 윗 글의 뜻은,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며,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며란 뜻은, 이스라엘 독립을 뜻하므로,

 

1948년 5월 14일(금) 오후 4시 텔라비부 박물관에서  하디크바 (Hatiqva), 즉  희망  이란 국가(國歌)를 부른 후, 벤쿠리온 외 36명의 국회의원들이 독립헌장, 즉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적 본질적인 권리와 유엔 안정보장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

 

33절 -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룬 줄 알라. (주님의 지상강림이 가까이 온줄 알라).

 

34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어지리다. 

 

35절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절 -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느니라. ( 마태 24: 23-36 )

 

성경이 말하는 한 세대는 100년을 가르킵니다 . ( 창 15:13 / 창 15:16 )

 

창세기 ( 15 : 13-16 )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들이 이방인에게 객이되어( 포로가되어 ) 그들을 섬기겠고 , 그들은 4 백년 동안 네 자손들을 괴롭게 하리니,

 

14절 -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것이며 (혼 내줄것이며) 그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절 - 너는 장수 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 될 것이요,

 

16절 - 네 자손들은 4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라. ( 창 15:13-16 )"

 

출애굽기,(12장 40절)

        애굽에 노예로 거주한지가 430 년이라, 430 년이 마치는 그날에...

 

그러므로,

이스라엘 독립  1948년  5 월 14 일 + 한 세대 100 년  = 세상 끝 날  2.048 년,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천사들도 아들도 (예수님)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심은 오직 세상 종말의 심판주되신 하나님의 주권이심을 강조하시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느날과  어느때를  정하지 말라는 명령이며 한마디로 말한다면 종말이란 예수그리스도가 지상 재림하셔서 대환란을 믿음으로 이겨나간 성도들과 만나는 그 날이 바로 성경적인 종말임을 천명하면서  성경에 조명을 받은 그 감격스런 날이  2.048 년 쯔음 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믿고 있는 성도님들은 아래 영상을 꼭 보시고 주님이 지상강림하시는 그날이 바로 이 지구의 종말임을 깊이 깨닫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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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지 말에 살고있는 인간들에게 닥아오는 재앙들을 아래 영상을 순서대로 보시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말세의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 필독요망 )

https://youtu.be/pqX6hXhHEWU

 

그리고 1992년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이장림 목사의 세대주의적,( 일명 손오공 전천년 )휴거 사건에 전말을  아래 영상을  참고하시라고 ...

 

https://youtu.be/cj-_0Fc2A5U

 

YouTube 동영상([꼬꼬무 6회 요약] 인간이 증발한다? 1992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손오공 전천년  '휴거소동'의 전말 미리보기

 

학설이 아닌 2048년 예언은  이 세상  창조이래 어디에도 없는 예언으로서  나 김영빈 목사가 성경의 기록된 그대로  받고 깨달은  예언임에 틀림 없기에 많은 비판가들이 이단이라고 떠들어대도 성경에 예언된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아래 영상을 참고하시라고,

https://youtu.be/H-y7Ic-Y0W

YouTube 동영상(현 사태가 종료된 후, 앞으로 30년 동안 지구에 일어날 재앙들) 미리보기

 

https://youtu.be/UF0nr2Nv42c

YouTube 동영상(세상에 정말 이런 일이!? 지구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현상 TOP6)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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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아랍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함.

https://youtu.be/Awbx5XHW1xQ

 

주님재림 전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이스라엘(이삭) 과 아랍(이스마엘)과의 평화 협정을 트럼프가 이루었으며, 위를 크릭하면 세대주의적 전천년에 따른 휴거만 다르고 그전까지의 예언은 그대로 다 이루어 졌음을 볼수가 있지요, 그러나 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을 믿지 않고,  역사적 전천년을 믿기 때문에 평화협정 후 부터에 강의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리며 한번 열어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랫글을 우수게 소리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2044년까지 꼭 살아야 하는 이유

2044년 달력 좀 보이소    

    10월1일  반괭일 (토)
    10월2일  왠괭일 (일)
    10월3일  개천절
    10월4일  추석연휴
    10월5일  추석연휴
    10월6일  추석연휴
    10월7일  추석연휴
    10월8일  반괭일 (토)
    10월9일  왠괭일 (일)

이런 긴연휴는 지구 달력 역사상 처음이니. 

요때까지만  믿음으로 건강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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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떤 곳 인가

 

1) 죽은 후에 영혼이 들어가 안식하는 곳이요 주님 재림 후 몸이 부활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복락을 누리는 곳 입니다.

 

2) 성도들에게 주워진 각각의 5가지 상급의 면류관을 쓰고 영생복락을 누리고 사는 곳 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님이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8)


3) 공의가 충만한 곳 입니다.

 세상은 부정 불의가 판을 치는 곳이므로 공의 만족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에 공의를 만족 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곳 입니다.

 

4) 풍족한 곳 입니다. (계시록 22:1-2)

 세상은 제한된 물질로 인하여 서로 속이고 속고, 뺏고 뺏기고, 한 사람 흥하면 한 사람 망하는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천국은 이런 현상에 반대되는 풍족한 곳 입니다.


5) 밤이 없는 곳 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비취심이니라 저흐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라.(계시록 22:5)

 

세상의 밤은 죄악의 밤 입니다. 술주정, 폭행, 음란, 강도, 살인 등의 범죄 사건이 거의 밤에 주로 발생 합니다. 그런데 천국은 어린 양 예수의 빛으로만 삽니다.(계21:23)

 

6) 재난과 노쇠와 아픔이나 죽음이 없는 곳 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라.(계시록 21:4)

한 마디로 말해서 영원한 청춘, 예수님의 나이 33세로 누리며 사는  곳 입니다.(요한1서 3:2)

 

7) 다시는 이별이 없고 주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계속되는 곳 입니다. 세상에선 만남의 기쁨이 있는가 하면 이별하는 슬픔이 더 많습니다. 질병, 사고, 재난, 노쇠, 죽음 등으로 뜻하지 않는 이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절대로 헤어지는 일이 없고 늘 주님의 영원한 사랑의 신부로써 주님만 섬기는 즐거움으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는 곳 입니다.(계21장)

 

※ 천국은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으나 공기가 보이지 않아도 있는것이 확실한 것처럼 내세의 천국도 확실히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본능을 주셨으니 이것을 만족시켜주는 천국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배가 고픔은 분명히 음식이 있음을 말해주며, 목이 마름은 분명히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있음을 알듯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천국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우주 안에서 가장행복한 곳 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천국 가겠다고 하지 지옥 가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답니다. 성경에 보면 에녹도, 엘리야도, 예수님도 승천하셔서 내세의 천국을 실제로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상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주님의 의식으로, 즉 예수 어린양의 빛으로(계21:23-27) 심령에 채웠는지에 따라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위치가 다를 것입니다. 지상에도 좋은 저택이 있는가하면 판자 집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린양의 빛, 즉 주님의 의식에 맞는 성도는 영광에 면류관을 쓰고 주님 보좌 옆 궁전 같은 저택에서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겠으나,  그렇지 않는 사람은, 즉 턱걸리로 올라간 사람은  주님의 보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썩지않는 면류관을 쓰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곳에 살아도 천국은 천국이기에 영원토록 행복한 곳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개장 같은 장난감 집에 들어가 재미있게 장난하는 그 아이들 의식의 눈높이가 같기 때문에 좋은 것과 같이 천국이 비록 개장같은 집 일지라도 별 불편 없이 좋을 것이겠지만, 그러나 한번뿐인 인생 외길 살아가면서 예수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여 주님의 보좌 옆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영원토록 살아가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천국은 죽은 후에 들어가는 곳이니 죽음은 행복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하며, 면류관을 받는 곳이니 만큼 지상에 살아있을 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성도들만 들어가는 곳 입니다. 천국은 공의가 충만한 곳이며, 풍족한 곳이며, 병과 재난과 노쇠와 죽음이 없는 곳이요, 감사의 새 노래를 부르는 곳이요, 이별이 없는 곳이며, 주를 섬기는 즐거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 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내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들은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아들이 되리라.(요한계시록21:1-7)  아멘 !

 

흙에서 천국까지 기나긴 여정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천국에 오셨으니 세 번 놀라실 겁니다.

먼저 천국이 너무나 좋아서 기절하고,

 

두 번째로 올 사람이 못 온 것을 알고 난 후 졸도하고,

 

세 번째로 오지 못할 사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까무러 치고 말겠지요.

 

우리들은 어느 누구도 믿음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겠지요.

 

천국에는 장로교인 들이 많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는 것입니다. 침례교, 순복음, 성결교, 감리교 기타 등등모두가 한 명도 없고 오직 예수 중심, 말씀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성도들만이 있음을 눈으로 보고 지상에 살면서 남을 무시했던 생각에 미안해 한답니다.

또 천국에는 높은 직책 받은 성도들이 많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별로 없고 열심히 주님만을 위해서  순교하신 성도님들은 생명의 면류관(계2:10)을 쓰고,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수고한 성도들은 영광의 면류관(벧전5:2-4)을 쓰고,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살전2:19)을 쓰고, 의의 면류관을(딤후4:8)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며 놀라실 것이며, 그냥 그럭저럭 믿으면서 턱거리로 올라온 성도들은 썩지 않는 면류관을(고전9:25) 쓰고 얼굴 제대로 못 들고 다닌다고 하니 어떤 면류관을 써야 좋을까요?

 

※ 축도

이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흙에서 태어난 우리들을 보호와 위로로서 개혁주의 신앙으로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불가항력적 은총이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삶의 옷깃을 참된 주님의 백성들,  개인, 가정, 사업, 자녀, 건강과  섬기는 교회위에 영원히 함께 할 찌어다. 아멘

 

   

 

                                                       김 영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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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을 참되게 고백하려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인데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한 자들이 있느니라(요6:63) 

 

주님은 직접 말씀하시기를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음은 말의 중요함을 언급하신 줄 압니다. 주님의 참된 백성들이 잘못된 사도신경을 올바로 고백하려면 말부터, 즉 영부터 고쳐야만 합니다.

사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열두사도가 만든것도 아닌, 4세기경 로마 카톨릭교회가 수차에 걸쳐 편집과 보안을 거듭해서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천주교가 만든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에 신조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 교파들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 가지고 시끄럽게 비판하는 것보다 지금도 천주교가 만든 잘못 된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사용하는 교회를 위하여 , 말이 곧 영이라고 하였으니 이왕 고백할 바에야 글이 곧 말씀인데 글부터 올바로 고친 다음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진실한 성도들이  올바른 말을 해야 주님께 드리는 올바른 고백이 될 것 같기에 아래와 같이 수정해 보았습니다

 

사 도 신 경

<The Apostles' Creed>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독생자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처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나의 죄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옵다가,

거기 저리 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교회와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수정한 사도신경

사 도 신 경

<The Apostles' Creed>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처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나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옵다가,

거기  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천주교에서 만든 사도신경에 틀린 글, 즉 말들을 수정하는 이유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 

 

독생자 (獨生子, begotten son)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외아들은 무엇이며 독생자는 누구라는 말인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독생자란 의미에는 창조주란 강한 어휘가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본분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독생자와 외아들이란 말은 창조주와 피조물이란 차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흔히 외아들이라고 하면 나약하고 응석 부리는, 곱게 기른 어린 아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주교 성당 안의 14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은 부잣집 외아들로서 잘 먹여서 살이 포동포동 찐 그림과 성모 마리아 품에 안겨서 응석 부리는 귀염둥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함의 아들 구스, 그의 부인 세미라미스(Semiramis)가 아들 니므롯과 간통하여 아이를 태중에 가졌음을 알고 세미라미스가 여왕이 되려고 니므롯을 비밀리에 죽이고 몇개월 후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담무스요 세미라미스는 담무스를 니므롯의 환생이라 하고 담무스를 여인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태양신으로 추대하고 다시 자기 아들, 담무스와 간통하여 자신을 신의 아내요 신의 어미로 호칭하게 하면서 그때로부터 여신 숭배가 시작되어 오늘날의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신처럼 섬기는 무서운 죄를 지으면서 살다 죽으면 지옥으로 직행하는 종교가 바로 천주교입니다.

 

바벨탑 쌓는 도중 언어 장벽으로 흩어졌을 때 (창 11장) 그들은 여신과 어린 담무스의 그림을 들고 흩어져 중국까지 들어가 여신을 싱무(Shingmoo, 聖母)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헤르타(Hertha) 여신이 아이를 안고 있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신 디사(Disa)라고 불렀으며, 인도에서는 여신 인드라니(Indrani), 이스라엘은 아스다롯 혹은 아쉬토렛(Ashtoreth) 여신을 섬겼습니다. (삿 10:6, 삼상 7:3-4, 12:10, 왕상 11:5, 왕하 23:13)

그 가운데 잘 알려진 여신의 호칭 중 하나는  하늘의 여신으로 불리웠던 것입니다.

(렘 44:17-19)

 

에베소에는 위대한 어머니 다이아나(Diana) (행 19:27)로, 고린도에는  아프로티네, 애급에는  아이시스,  일본에는 오미다라아미가스, 여신과 아울러 수많은 잡귀신들이고,

한국엔 특별한 여신이 없고 잡 나부랭이 귀신들인 성황당, 부뚜막, 장독간, 똥두깐 귀신  같은 것들에게 복을 빌어 왔던 것뿐입니다.

 

천주교에서 AD 431년 마리아 숭배 교리가 채택되면서 그 후 마리아는 마돈나로 부르고, 니므롯은 바알로, 세미라미스를 바알 티로…. 영어로는 My Lady, 라틴어는 메아 도미나(Mea Domina), 이탈리아어로는  마돈나(Madonna) 로 부릅니다.  로마 천주교에선 마리아를 중보자로 숭배,  하늘의 황후 라고 불렀습니다.(렘 7:18-20)

 

이렇게 수많은 여신과 외아들 신을 섬기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성모 마리아( 세미라미스 )와 외아들 예수를 (담무스) 섬기게 하는 것이 천주교의 착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처음에는 마리아의 교리가 없다가 1931년  데오토코스  논쟁에서 확정,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 라고 선언하였고,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을 발표하여 그 기념축제일로 12월 8일을 제정하였고, 1950년 마리아 승천설을 선포하고, 1962년에 마리아 종신 처녀설 등을 선포하므로 완전 신격화시켰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교리를 믿도록 유인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무서운 종교가 천주교임을 천명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3)

 

※ 동정녀란 오직 천주교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동아 새 국어사전을 보면  동정녀 란  동정인 여자, 즉 성모 마리아를 칭하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 성경 어느 곳을  찾아도 없습니다. 물론 숫처녀, 즉 처녀란 말도 없습니다. 오직 사도신경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The Virgin과 Virgin의 차이는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The란 고유명사 앞에 붙여 불변의 강한 어휘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엇입니까,  The Virgin Mary, 대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마리아를 신격화시킴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처녀가 남자를 알면 여인으로 불립니다. 동정녀란 죽을 때까지 남자를 몰라야 하는 순수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숫처녀의 몸을 가지고 오직 성령으로 예수님만을 잉태하여 해산하고, 그 후 요셉한테 시집가서 남동생 4명과 여동생 둘 이상을 낳은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마가복음 6:3)

 

그러므로 마리아 종신 처녀설은 성경 말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동정녀란 말보다 숫처녀, (처녀) (an immaculate virgin)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했습니다만,

 

차라리  빌라도와 헤롯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하는 것이 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사람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에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협작 모의해서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말하지 않고 로마인인 빌라도를 집어넣었을까요.

빌라도의 부인  프로쿨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 는 그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리스와 에티오피아 교회에서는 그녀를 성자 반열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그녀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시키면서 빌라도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마 27:19)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헤롯이나, 빌라도나, 유대인들 때문에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택하시고 흠 없고 점 없게 하시려고 성령을 심령 가운데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잘 믿고 생활하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나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리로서  란 국어사전에 없는 말보다는 차라리 국어사전에 있는  거기로부터 말하기 좋고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  거룩한 공회와

이 말은 구약에 6번, 신약에 15번 언급하고 있으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나 바울을 잡아다 때리면서 종교 재판하는 장소였습니다. (눅 22:66, 요 11:47, 행 4:15, 5:21, 27, 34, 6:12, 23:1, 6…) 그러므로 공회란 절대로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곳은 오직 참된 교회뿐이기에,  거룩한 교회와  라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교통이란 의미는 어떤 물질 따위를 가지고 왔다 갔다 한다는 뜻과 생각이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고백(기도)문에는 맞지가 않습니다. 교제(交際)라는 말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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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교(천주교)의 연옥(煉獄)설의 바탕

로마교(천주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란 중간 보충대 같은 장소를 만들어서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로마교(천주교) 교리문답 1부 6장 트렌트 신경 25장에 연옥의 존재와 그곳에 간 영혼들이 지상에서 가족들의 기도와 선행 그리고 바치는 돈에 의하여 연옥에서 천국으로 승진 발령 받고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신앙이 아닌 종교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죽은 사람이 지상에 살아있을 때 잘 믿었으면 즉시 천국으로 가겠지만, 잘 믿지 못한 사람의 영혼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연옥이란 장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연옥의 고통은 그 사람이 지은 죗값에 따라 기간이 다른데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또는 몇 년, 심지어는 몇 백 년 동안 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옥이란 형무소에서 구출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연보를 많이 바치면 구출된다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 믿는 외경 마카비 후서 12장 43-46절에 보면  2.000 드라크마의 은을 모아 속죄를 위한 희생물을 준비하도록 그것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이것은 부활을 생각하는 훌륭한 선행이다. 부활을 바라지 않는다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무익하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해 속죄 희생을 바치는 것은 죽은 자를 연옥에서 구원케 하려함이니라 고 기록되어 있는데, 즉 돈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인데 구원커녕 지옥으로 가는 길을 피할 수가 없는 무서운 교리입니다. 로마에 웅장한 베드로성당도 그런 목적을 두고 거둬드린 돈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문신을 하지 말라 (신명기 26:14, 레위기 19:28) 우리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돈이 죽은 자의 영혼을 구할 수 없음을 성경은 수차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니 하나님은 이르시되,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2:19-21,  에베소서 2:8-9, 에스켈 7:19)

 

물론 살아 있을 때도 돈으로는 구원을 절대 받을 수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인데, 사이비 이단들, 사교집단들은 헌금바치는데 대하여 겁은 주곤 하지요. 그러나 헌금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6)

 

그리고 이단으로 파문당한 영등포 침례교 성락교회(性樂 交懷)교주 김기동목사는  한만영목사의 처남이고 한만영 목사는 LA 은혜 한인교회 김광신 목사와 대학동창이며 , 그리고 이태화, 김삼환 목사 등등 베뢰아 귀신파에선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귀신들이 되어 이 세상을 떠돌아 다니다가 사람몸에 들어가 질병을 유발시킨다고 하면서 귀신들에게 속아서 귀신 쫓아내느라 정신들이 없습니다.  그들이 귀신들을 쫓을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  확실한 건 그들이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이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요,  만약에 안다면 그 짓들을 하겠습니까.

 

 

교황은 연옥 체류 기간에 영향을 주는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형무소의 죄수를 사면이나 감형을 시킬 수는 있으나 인간의 영혼을 마음대로 배치 발령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지옥에 간 영혼을 천국으로 승진 발령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물론 살아있는 성도들을 성화시키시고 심판하실 수는 있으신 분이지요. (신명기 4:4, 사도행전4:12, 디모데전서 2:5)

 

※ 연옥의 교리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의 인죄론 입니다. 사람의 죄에는 원죄(原罪, original sin)와 본죄(本罪, actual sin, 자범죄)가 있음을 정통 기독교와 천주교가 함께 인정합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본죄를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도저히 찾어볼 수 없는 종교심의 발로로 조작된 교리입니다.

 

즉 대죄(mortal)와 소죄(venial)로 구분합니다. 대죄는 성일이나 주일의 미사에 불참, 술에 만취, 물품 절도, 비 가톨릭 성경이나 다른 종교 서적을 읽는 것, 음행 등이고, 소죄는 영혼이 죽음에 이르지 않고 아픔만 느끼는데 그대로 두면 대죄로 승격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헐뜯는 말, 술에 취함, 과욕, 과식, 싼 물건 절도, 음욕 등이 이에 속한답니다. 이러한 거짓된 죄관(罪觀)이 바로 거짓된 연옥설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의식화 된 것이 바로 7성례입니다 :

영세,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혼례

 

이를 통해 천주교의 구원관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며 구원의 완전 성취까지 그 남은 과정을 계속해서 선행해야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예수는 천국을 마련하셨고, 로마 가톨릭은 천국에 이르는 사닥다리를 세웠으니 7성례는 천국을 올라가는 사닥다리의 일곱 계단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사닥다리 빌린 값을 받는 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성례는 성만찬과 침례(세례) 뿐입니다. 그 외에 어떤 성례도 예수님이 제정하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정통 개혁주의 기독교는  믿음은 바로 구원임을 확신합니다.

 

(에베소서 2:1-10, 베드로전서 1:5, 요한복음 6:39, 10:28-29, 로마서 1:17, 4:3, 23:25)

 

우리는 여기서 확실하게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선행이란 구원의 산물이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선행은 구원받은 후에 따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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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천국까지<성도의 신앙교재>를 지은 김 영 빈 목사는, 1976-78년도 해병대 도서방위 사령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섬을 방어하는 나바론 해안포 대장으로 근무할 때 백령도는 새마을 사업이 불량함으로 박대통령 특별지시로 술반입이 금지되었지만 오직 성당에 신부들만 인천 주교가 보내준 양주를 마시곤 했지요,

 

나도 귀한 양주마시러 열심히 다니면서 배우고 외우면서 견진까지 받아 세례명을 "그리스도퍼"란 이름도 받았습니다. 그때 배운것들이 미국 C&MA 신학대학원에서 천주교에 대한 잘못된 교리들을 깨닫게 해준 것들이 지금의 나의 신앙 상태를 올바로 잡아주며 조명해 줌에 더욱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후  백령도 용기원산 좌측 적함대 상륙이 가능한 해안 일대에 UDT(18기-72년) 후배들과  함께 수중기뢰를 매설하고  18개월 나바론 해안포 대장 임기를 마치고 중앙정보부 대북특수공작관으로  발령을 받고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에 다녔지요.  그러니까 성당에서 술마시는 주당으로 주당에서 예배당으로 주님께서  나의 인생행로를 천국의 길로 완전히 바꾸어 주심에 대하여 늘 감사를 드리곤 한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바꿔진답니다. 그러니 하실 수만 있다면 위에 수정한 사도신경 그대로 그리고 아래 주 기도문도 수정하였으니 그대로  올바른 신앙고백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 기도문 

 

* 시험이란 말보다 유혹이 적합하고 ,다만 보다 또한이 적합하며,

대개(원칙으로 보아서....)란 문맥이 많이 어색하므로

삭제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에 아래와 같이 수정해 보았습니다.

 

 

 

주 기 도 문

 

The Lord's Prayer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또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대개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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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글

 

우리를 온전케 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기에 결국 천국에 가서 상급 받는 것도 큰 교회 작은 교회에 다녔다는 것과 목사 장로 같은 직분으로 상급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얼마 만큼 행하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본래 번지는 삼층천에 있기에 바울은 루스트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원수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 영혼이 셋째 하늘에 갔다 와서는 그곳을 사모하면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고후12:2-4)

 

삼층천은 사랑의 번지이기 때문에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삼층천에 계시지만 세상을 내려다보시고 세상을 상대로 사랑을 베푸시면서 하나님 노릇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은사나 능력으로 하나님 노릇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정도는 도사나 넥타이멘 무당이나 타락한 천사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고치고 예언을 잘하고 말씀을 잘 하고 잘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삼층천에 온전한 사랑으로써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남편이나 아내, 또한 자식들, 자기보다 못한 교인들을 붙잡고 그들을 위해서 마음이 끌리고 그 사람들이 끌려 올 때 자기가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 위에 부족한 사랑이 보충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감당하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모양 좋게 달고 다니며 또 나무판으로 된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옆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빈 십자가는 늘 주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메달려있는 십자가 이기 때문에  이런것들을  무시하면 절대로 온전함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싫다고 쫓아내거나 귀찮다고 무시하면 내 인생은 나도 모르게 망가져 버리고 맙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받아 병도 고치고 방언도 예언도 방언통역도 기타 행하는 것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사랑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정해준 사람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상관과 부하, 목사와 성도를(골3:18-4:1/ 엡5:22-6:9))귀하게 여기고 순종하면서 섬길 때 비로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끼고 있는 재산에 따른 집이나 부동산, 그리고 어렵게 돈 바쳐서 따낸 박사 학위도 내 자식들도 나를 온전케 만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더 바보같이 만들다가 나중에는 한 많은 쓰레기통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옆에 배치된 나보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특별히 뽑아서 우리의 온전함을 위해서 훈련하라고 섭리적으로 붙여주신 훈련용 자료요 세상에 한부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한 사명임을 자각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언이나 병 고치는 것 외 여러 은사도 중요하지만 더 귀한 것은 개혁주의 신앙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명감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

성도들의 신앙교재는 이런 십자가의 능력을 글로서 나타낸 문자에 불과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글자의 뜻대로, 싫어도 손해 보면서 움직이기만 하면 그것이 십자가의 고난이기에 반드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그 인도함을 따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비로소 내가 나를 벗어나면서 성령의 능력이 내 몸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흙에서 천국까지 성도 신앙교재 책은 2002년 뉴욕 북부에 위치한 니스카유나에서  생명샘교회, 목회할 때 집필하여 미비하나마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2007년 7월 알레르기 치료차 하와이로 이주하여 미비 된 점을 보충하고 미흡한 점들은 수정 보완하였으나 아직 완전하지 못함을 과제로 남기고 흙에서 천국까지의 모든 일정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개인 가정 사업 자녀 건강위에 우리 주님의 크신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2008년 5월 5일

하와이 진주만에서 김 영빈 목사

 

                                                              필 승

 
 

                       아내와  딸 그리고 두놈의 손자와 두살된 손녀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