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말씀 !

제 1 과 소명(召命)과 중생(重生)- (구원론)

늙은 Benhur 2024. 5. 16. 15:30

영의 양식 !

 

제 1 과 소명(召命)과 중생(重生) (구원론)

 

1. 부르심 (Calling)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예지)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예정)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예정 ) 하셨느니라.(로마서 8:29-30 )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그냥 선택한 것이 아니고 만세전에 미리 택하여 놓은 성도들을 때가 되매 부르시고 그다음 성령님의 은혜로 의롭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4-5 )

 

성령의 구원 적용에 있어서 제일 먼저 나타난 행위는 죄인을  불러주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를 불러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이가 ...(갈 1:15).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한 후에 모든 인간들이 지옥으로 향해 내려가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몇 살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그들이 지옥을 향해 가는 방향을 천국의 길로 돌려놓는 그 사역이 바로 소명이요, 

또 인간 편에서는 그 때가 바로 거듭나는 중생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르심에 대한 두 가지 경우를 말씀하고 있으니 하나는  외적 부르심이요, 또 하나는  내적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1) 외적 부르심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라고 하는 열심 있는 권고의 설교와 초청에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보통 전도의 행위로써 표현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이렇게 복음이 전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마음에 감동도 없고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마 23:37, 22:14, 행 13:46)  이것을 외적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전도가 중단되거나 좌절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받아들이건 배척하건 간에 복음의 초청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 부르심은 장소와 시기에 구애됨이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주적인 부르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불신자들에게 핑계치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즉 나는 예수의 복음을 못 들어서 못 믿었다고 핑계 댈 수가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롬 1:20, 롬 10:14-15, 요 15:22)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그의 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하게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핑치 못할지니라.(롬 1:20)


어떤 사람은 전도를 받아 교회 생활을 착실하게 보일 정도로 잘 합니다. 대표기도 도, 봉사도, 헌금도, 전도 도 곧 잘 합니다. 그런데 자아 중심으로, 자기 편한 방법으로 교회생활을 하다가 어떤 문제로 말미암아 꼴 보기 싫다고 교회를 헌신짝 벗어 던지듯 버리고 뛰쳐나간답니다. 

 

그리고 이웃과 교인들에게 자기가 교회를 나온 행위의 타당성을 주장하다보니 할 수 없이 교회를 헐뜯어야하는 무서운 죄를 다시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순례의 길을 다니다가 지쳐서 집안에서 가족 몇 명을 모아놓고  나 홀로 교회를 개업하고 생활하는 사람들 또한 외적 부르심을 받은 교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의 방주를 열심히 짓느라고 시간, 물질, 정성을 들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에게 잡혀서 타기를 마다하고 도망을 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히 6:3-8, 고전 10:1-12, 창 7:7).

 

2) 내적 부르심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부르심을 말하며, 성령의 역사로 내적 부르심을 아주 효과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벌써 영생 받기로 예정되고 선택된 자들은  초청의 복음이 귀를 통하여 마음 깊숙이 파고 들어와 감동을 받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참으로 생각지도 않을 때 갑자기 각자의 심령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 부르심은 구원을 유효케 하는 성령님의 능력 있는 부르심이요, 또한 후회 없는 부르심이니 결코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은 이런 내적 부르심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불타의 도를 숭배하는 스님들도 복음을 듣고 성경에 대해 아주 박식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의 그 뜨거운 복음의 진리가 그들 머리에 꽉 차 있을지라도 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의 감화가 없기 때문이지요.

 

성경의 글 자체가 사람을 거듭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학식이 높은 불신자들이 오히려 우리들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이런 점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성령을 모신 자만이 읽고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책입니다. (딤후 3:16,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을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게 받아 말한 것이니라.(벧후1:21)

 

그래서 성령을 떠난 어떤 성경 지식도 한낱 교양과 도덕에 불과할 뿐 구원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안다고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미숫가루 한말을 지고 산 속에 들어가 금식하면서 성경을 72 독을 했다는 침례교 김기동목사는 베뢰아 귀신파 이단의 교주가 되어 교회에 젊은 여자들과 놀아나다가 2023년에 사망했으니 지금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러므로 성령의 감화 없이 성경 많이 읽으면 제정신 나간 이단 되기 쉽고,  말씀에 능력 없이 기도 많이 하면 기독교 점쟁이나 무당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찬양과 감사 많이 해서 이단이나 미친 사람이나 점쟁이 노릇한 사람은 기독교 역사에 없었습니다.

 

물론 기도는 영적 호흡이니 만큼 매일 매일 꼭 해야만 합니다. 숨도 4분 멈추면 대개 죽습니다. 저는 해군 Navy Seal - UDT<18기 72년> 훈련할 때 수중에서 3분 호흡정지 훈련 중 3분 15초 만에 졸도 할 뻔했습니다. 

 

이처럼 호흡을 멈추면 안 되는 것과 같이 기도도 쉬면 안됨으로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 12:12) 생활해야만 합니다. 성경도 3장-5장 정도 밥 먹듯이 매일 읽어야 영적 세계의 신비함을 서서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몇 시간씩 한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도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는 외적 부르심의 맛만 봤기 때문에 배고프다고 배척을 당했으나 내적 부르심을 입은 여러분과 저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즉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고후 2:15-16,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니라.(고전 1:23-24)

 

이와 같이 같은 진리라도 성령의 역사하심과 아니하심에 따라 구원하는 복음이 되고 허탄한 소리가 되는 것이니 성경과 성령의 관계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와 같이 헤어질래야 헤어질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는 외적 부르심의 최고의 수단이요 또한 택한자들을 향한 내적 부르심의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즉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라고 외쳤을 때 불택자들에게는 한낱 시끄러운 소리로 귓전에 맴돌다가 사라질 것이지만, 

그 무리 중 안에 택한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두 날 가진 날카로운 칼날의 말씀이 되어서 성령님과 함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을 감찰하실 것입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고 운동력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리하여 영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과 뜻을 감찰 하시느니라.(히4:12)

 

이런 심령의 찔림을 과연 몇 번 거부하느냐가 문제지 결국은 돌아오고야 말 것입니다. (행 13:48) 그러므로 전도는 내적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양심을 향한 계속적인 구원의 방편이니 만큼 계속적으로 찔러대야 합니다. 

 

그래서 양심이 괴롭도록 만들어서 번뇌속에 고통의 말씀이 칼날에 양심을 찌르게 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설교듣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두 날가진 설교를 듣고 아픈 마음을 술로 여행으로 옛 습관으로 도망을 치려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성령의 작살이 박힌 이상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 고래를 잡는 포경선이 고래를 발견하고 따라가면서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조준 발사합니다. 작살은 고래 등에 명중됩니다. 고래는 피를 흘리면서 있는 힘을다해 배와 거리를 멀리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배에서는 로프를 풀어줍니다. 한정된 로프가 다 풀어졌을 때, 이제는 배와 고래가 만나는 길 밖에는 절대로 없습니다. 

 

우인치를 돌리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괴음을 내면서 우인치는 로프를 말면서 서서히 돌아갑니다. 고래는 피를 흘리면서 몸부림을 치지만 배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 집니다. 결국 배의 램프가 열리고 고래는 그 램프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두 동강으로 시작하여 수천 동강으로 분해가되어 통조림 통안에 들어갑니다.

 

이 예화의 의미를 이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의 내적 부르심을 피해나갈 자가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위에 글은 나의 간증인데 나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몸부림을 쳐봤지만 몸부림을 칠 때마다 번뇌의 피만 더 흘릴 뿐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사방을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신학교 문고리만 반짝거리기에 모든 것 단념하고 38살에 울면서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인생 사십 평생에 가장 즐거운 고통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명(구원) 받은 것은 절대적으로 성령님의 내적 힘으로 되며 그 방편(수단)으로서 진리(성경말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진심으로 깨닫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2. 거듭남 (Regeneration) 으로 이어지겠습니다.

 

김영빈 지음 " 흙에서 천국까지" 성도의 신앙교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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