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말씀 !

세상의 종교들을보니....

늙은 Benhur 2023. 11. 20. 10:54

    오늘의 양식 ( 11.26.2023 )

 

              세상의 종교들

오래전에는 아프리카에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성황당을 짓고 사람을 잡아 제사를 드린 다음 먹었답니다. 그런데 같은 숲속에 사는 맹수들은 그냥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인종과 흡사한 원숭이가 성황당 지었다는 뉴스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하와이에 산지 5년이 되었는데 종교성이 강한 일본 사람들이 많아 이상한 종교 행사들을 볼 수가 있고, 이곳 섬 족들도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기독교의 현실을  보면 이런 토속적인 토질에 기독교란 씨앗을 뿌려서 그런지, 열매가 기독교의 본질과는 다른 종교와 혼합된 교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종교는 구라다 ! 란 재미있는 책이 출간 되었고, <구라>라면 거짓이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럼 왜 구란가를 논해보면서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는 구라지만 분명히 그 가운데 참다운 구원이 있음을 천명하면서 논해 볼까 합니다.

 

사실 세상에 종교의 수를 공식적으로 집계한 것은 없으나 수십억으로 보는데, 특히 일본만 해도 800만 잡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왜 당신들이 믿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가, 하면서 왜 당신들은  우리를 무시하는가, 다른 종교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네만 자기 교회로 나오라고 강요하는가, 라고 반문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같다고 생각하면서  양심껏  정성을 드려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실 한국의 종교적 특성은 정성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듯이 한국 사람들의 지성은 하늘을 움직이려는 잡념이 아니라 집념입니다. 이 무서운 인간적인 집념이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한()맺힌 민족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사람이 정성을 다 한다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데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적인 피조물(영적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꽃나무는 그 나무에 붙어서 갉아먹는 벌레를 어찌할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와서 벌레를 잡아주던가 약을 뿌리든가 해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인간은 이미 이 세상이 마귀의 손아귀 속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으며 인간스스로는 절대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진노의 자녀로서 못 박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들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2)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아 육체적 쾌락에 도취하게 유인하여 순간적으로 기쁨을 따라 죽을 때까지 분주하게 만들어서 나중에 더 이상 그 짓을 못할 때 죽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칠면조처럼 변하는 것이 사람의 자기의식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지요.

 

심리학은 인간의 의식 안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고, 또 똑같은 조건 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변화, 즉 원천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신령한 것, 즉 영적인 것은 영으로만 분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야 분별하느니라.(고전2:13)

 

심리학은 경험의 통계이며 심리학자의 지식체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입장으로 어떤 학설(의견)을 주장 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심리적인 요법으로 부분적인 어떤 증상이 없어졌다 할지라도 인생 전체로 볼 때 전혀  변화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당한 문제를 또 다른 문제로 바꾸어 놓는 것과 같이,

한복입고 양복 입는 것뿐이지 속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인간들을 잡아서 속아 넘어가게 하는 종교들을 살펴보면 많습니다. 그것들을 다 논하기는 어렵고 그중에 다섯 그룹으로 논해보고 그 그룹안에는 수십개의 종교들이 경쟁이나 하듯 머리를 내밀고 있을 겁니다.

 

 

1. 이념 종교입니다.

 

오늘날은 이데올로기(Ideology)의 시대입니다. 옛날에 의식과 명상 종교들이 사라지고 오늘날은 이념종교가 한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념 종교는 합리적인 과학이나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치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유행은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자아의식의 욕구 때문에 현대인들의 구미에 더욱 맞는 것입니다.

 

사실인 즉 이념화한 자아의식은 남을 공격함으로써 자기 궁핍을 간접적으로 보상받고 마귀적인 파괴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념 교육으로 의식화된 사람의 양심은 사랑의 관계를 떠났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행동을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며, 반면에 마귀는 이념을 산출케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못 보게 하고 추상적인 이상만 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념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가 적으로 간주하고  원수로 때려 부수는 것입니다. 자기들 간에는 대중 심리로 인한 소속감으로 더욱 뜨거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이념 종교에서는 개인의 가치란 있을 수 없고 이념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지요만약 이런 이념 수행에 비협조적이면 배신자로 가차 없이 비판 받고 처벌을 당합니다. 말할것도 없이 북한의 실상이겠지요.

 

 

이념 종교는 자기 망상을 자기 동기로 삼는 것입니다. 이념을 위한 추구는 단지 마귀에게 이용당할 뿐입니다. 이런 이념이 생애 최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지요. 사회봉사나 발전에 따른 개조는 자신의 영적 삶의 열매(부산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2. 의식(儀式) 종교.

 

이런 의식(Ceremony)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이런 행하는 의식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 안의 영적인 욕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표현에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현대가 실용주의화 하였다 할지라도 상징적인 의식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의식은 인간의 영적인 필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상징적 표현으로서 자신의 내적인 요구를 남에게 나타내는 약속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을 행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유익합니다. 종교의식은 인간의 자기표현에 절대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의식이 없는 종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의식이 단순히 자의식의 표현이나 사회적인 통념으로서 기계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의식으로만 습관들여진 당시에 제사장들이나 백성들을 무척이나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과 번제와 살찐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너희는 그냥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11-12)

 

의식을 많이 행하면 몸은 피곤하나 자아의식은 높아집니다. 그래서 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군 생활을 오래한 관계로 이런 면을 느끼곤 했었답니다. 군대 장군들 앞에서 군악대 의장대 사열 등 많은 행사들을 하는 것들이 다 그 장군들의 자아의식을 높여주는 좋은 예인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자기 소생이 없는 그런 의식은 결국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자기 영을 죽이는 행위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

 

 

3. 철학 종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합니다. 사람은 생각함으로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사물을 분석함으로써 가치를 부여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하고 특히 현대 문명의 시작은 헬라 철학, 즉 합리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헬라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지혜, 즉 철학이었습니다.(고전2:22) 그러나 그 사색도 사람의 영혼의 소산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생각하려고 해도 인간은 자기 경험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여 자기 영혼의 능력 이상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깨우침이 없이 탐구하는 사색은 한없는 상상력을 불러내어 현실에서 더 멀리 떠나게 될 뿐입니다. 철학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해 보이고 듣기에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으며 도리어 생활 전체의 흐름이 이론의 도구로서 남용될 뿐입니다. 철학은 어느 정도 인간 구원의 필요와 죄의 본질 그리고 하나님의 필요성을 규명할 수는 있으나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해결 방법은 전혀 무능한 종교입니다.

 

지혜 있는 자(철학자)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고전1:20)

 

 

4. 신비 종교.

 

신비주의는 인간의 영적 본성에 가장 가까운 종교입니다. 사람에게는 신성, 즉 하나님을 닮은 면이 많이 있어서 한쪽으로 계속 암시를 받으면 신비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슨 행동이나 느낌, 그리고 사상을 계속 반복하면 점차 신적인 현상, 즉 신비현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의식(意識 Consciousness.깨어 있을 때 마음의 작용 상태) 의 깊은 속에는 영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 나라나 각 지방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종교들이 이 신비주의에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비적인 종교는 인간의 환경이나 자기 욕망을 신격화 하도록 유도합니다. 우상종교와 신비종교는 의지를 개발하고 심성을 개발하기보다 자기 욕망을 신격화하여 맹목적인 종교 습관과 의식에 물들게 하고 사람을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런 종교는 특권층의 부패와 또 종교를 이용하여 사람을 착취하고 이용하려는 폐습을 남겼던 것입니다. 더구나 이 신비종교는 개인의 황홀한 경지를 추구하게 함으로서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사이비 이단 종교들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뀌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드릴 이시로다, 아멘.(1:22-25)

 

5. 도덕 종교.

 

도덕 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 중에 가장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 보다 도덕 종교는 사회성을 갖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도 지대한 것입니다. 특히 유교는 도덕 종교입니다. 제사마저도 내세에 대한 것이 아니고 조상에 대한 예의로서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도덕이란 인간이 가진 영적인 것의 표현(열매)이 되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영적 동기가 없이는 그냥 형식에 그치고 맙니다. 한국 사람들의 체면치레 는 유교의 영향에서 온 것입니다. 일찍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민족들은 체면으로 살아가는 예는 극히 드뭄니다. 그러나 체면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은, 아침 굶고 점심 건너뛰고 저녁 거르면서 다방에서 엽차 마시고 나올 때 이쑤시개 입에 물고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에 발맞추어 버젓하게 걸어 나오면서 배부른 것처럼 하는 행세 ! 추운 겨울 망사구두를 신고하는 말, 발에 무시무시가 심해서...........이런 형편에도 모양내는 것이나 말과 행동으로 부족한 면을 코팅하는 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한민족의 특성이 아니겠는지요.

 

이렇게 도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기 방어 의식만 높입니다. 그것이 위선입니다. 도덕종교는 자신의 의식을 자기 방어 내지 자기 전시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자기 영혼에 더 많은 짐을 지우게 하는 종교입니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자기의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게 하고 자기는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11:46)

 

많은 인간들한테 지탄을 받고 있는 교회 !

이 많은 교회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벗어난지가 벌써 오래되어 그 능력을 상실하였기에 세상 잡것들이 들어와 판을 치는 교회 안에서의 문제들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워낙 가치가 높은 물건에는 가짜가 판치며 위조가 성행하는 것이 현시대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변에 진짜 주님이 계신 교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천명하면서....

 

 김 영빈 지음 "광야의 식탁" 신앙 칼럼 중에서